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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tage

리바이스의 역사

조약돌3 2024. 8. 26. 00:32

목차



    AD 1853. Levi Strauss & Co. 설립

     

    독일 출신 이민자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Levi Strauss & Co. 를 설립했다.

     

    1800년 중반 당시 미국은 개척 시대로 금광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광부들의 옷이 잘 헤진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를 본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질긴 천막용 천으로 바지를 만들었고 이것이 청바지의 시초가 되었다.

     

     

     

    AD 1872. 리벳

     

    1970년대, 양복점에서 일하던 제이콥 데이비스는 주머니의 보강을 위해 구리 리벳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특허에 등록하고 싶어했지만, 돈이 없었다.

    이에 그는 리바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의 재능을 높게 산 리바이는 특허를 냄과 동시에 그를 회사에 취직시켰고 이때부터 리바이스에 금속 리벳이 사용되게 되었다.

     

    AD 1873. 쌍아치 스티치

     

     

     

    1973년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제이콥 데이비스는 트루 블루 데님에 리벳을 활용한 작업복의 특허를 얻었고 이때 XX 라는 이름의 청바지가 탄생했다.

     

    같은 해, 뒷주머니에 쌍아치 모양 스티치 가 꿰매졌고 이는 Levi's 의 트레이드마크 로 등록되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류 상표로 등록됐다.

     

     

     

    AD 1886. 두 마리 말

     

     

    1886년부터 Two Horse 마크 가죽 패치 가 리바이스에 사용되었다.

    바지를 끌어당기는 두마리의 말이 그려져 있으며 이는 리바이스 바지의 튼튼함을 보여준다.

    이 가죽 패치가 들어가고 판매량은 더욱더 늘어났으며 거의 모든 제품이 이 가죽 라벨을 달고 판매되기 시작했다.

     

     

     

    AD 1890. 고유 번호 ( 501 의 탄생 )

     

     

    1890년 구리 리벳의 특허 기간이 종료되갈때는 리바이스의 경쟁자들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었다.

    리바이스는 유사 제품과의 차별점을 주기 위해 제품에 고유번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XX 로 불리던 최초의 리바이스 청바지에 501 이라는 제품 번호를 부여하게 되었다.

    501 은 당시 데님을 보관하던 창고 고유번호에서 유래 되었다.

    이후 501 은 리바이스의 대표적인 청바지 모델로 자리잡게 되었다.

     

     

     

     

    AD 1928. Levi's ® 

    드디어 우리가 알고 있는 Levi's ® (리바이스) 가 상표로 등록되었다.

     

     

    AD 1936. 레드 탭 & 1세대 자켓

     

    쌍아치 모양, 가죽 패치 이후 경쟁사들과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이때부터 레드탭 을 부착하였다. 이때의 레드탭은 Big E ( LEVI'S ) 가 적혀져 있다.

    ( 1971년 부터 Small E (LeVI's) 가 됨 )

     

    또한 리벳이 가구와 안장에 흠집을 낸다는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리벳이 가려지도록 뒷주머니를 달았다.

    ( 위의 1873. 쌍아치 스티치 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보일것이다. )

     

     

     

    1963년 타입 I 자켓 이 만들어졌고, 이는 미국 노동자들이 입는 비공식 유니폼으로 여겨져 왔다.

    앞부분의 2개의 플리츠, 1개의 가슴 포켓, Two Horse 로트 넘버 506 의 가죽 패치와 품질을 약속하는 XX 를 조합한 라벨이 특징으로 이 자켓의 앞주머니에도 레드탭 이 부착되었다.

     

     

     

     

     

    AD 1940's. 낭비 금지

     

    이때 리바이스의 청바지는 전쟁에 관여하는 사람에게만 구입이 허가되었으며, 쌍아치 모양 스티치 는 실의 낭비로 여겨져 페인트 로 그려졌고 워치 포켓 등에 있던 리벳 생략 되었다.

    또한 전시중엔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슬레이크나 실의 종류가 통일되지 않은 채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가랑이 부분의 리벳이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 부분의 리벳이 모닥불의 열기에 달궈져 화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40년대 후반엔 페인트로 대체했던 쌍아치 스티치를 더블 니들 이라는 기술로 다시 부활시켰으며 워치 포켓의 리벳도 같이 부활하였다.

     

     

     

     

    [  To be continued.. ]